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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 Comp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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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각사각. 경훈이 놈, 사과 먹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온다.
“네 친구 중에 어디 전산실에서 근무하는 사람 있댔지? 내가 좀 급해서 그러는데, 그 사람한테 자료 복구 좀 부탁해 주면 안 될까?”
-무슨 자룐데.
사각사각.
“회사 자료! 내일 아침에 바로 프레젠테이션 해야 하는데 지금 발표 자료가 다 깨져 버렸어!”
-무슨 프레젠테이션인데.
“그걸 알아서 뭐하게!”
-도움받기 싫나 봐?
사각사각.
……이 자식 진짜 거슬리게!
“너 또 사과 먹지? 전화할 땐 잠깐 먹지 말지?
-안 돼. 피부 미용해야 돼. 무슨 프레젠테이션이냐니까.
내 참, 내가 말을 말아야지.
“후, 내일 새로 오는 팀장님한테, 앞으로 우리 팀이 맡게 될 브랜드랑 회사 전략 같은 거 소개하는 프레젠테이션이야.”
-그 소개를 왜 하는데.
“야!”
-왜 하는데.
사각사각.
……으윽. 내 인내심이……, 도예영이의 인내심이……!
“후…… 누.나.회.사.조.직.개.편.했.잖.아.”
이를 꽉 물곤 또박또박 말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래서 네 누나가 있던 마케팅팀도 둘로 쪼개졌잖아. 그래서 네 누나 새 팀으로 옮겼잖아.”
-그래서.
“그럼 새로 생긴 팀엔 새 팀장이 올 거잖아.”
-그래서.
“그 새 팀장님은 우리 회사 내부 사람이 아니라 외부에서 일부러 영입해서 오는 분이란 말이야. 그런데 그 사람이, 원활한 인수인계를 위해서, 출근하는 첫날, 자기한테 앞으로 자기가 맡을 브랜드라든지 회사 전략이라든지, 뭐 그런 것들에 대해서 프레젠테이션하라고 요구했대.”
-그래서.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야, 이 자식아! 그런데 지금 그 프레젠테이션 자료가 날아갔단 거잖아!”
-날아갔으면 별 수 없지. 프레젠테이션 못 하는 거지. 아님 대충 하든가.
“안 돼!”
-왜.
“내가 그거 어떻게 만든 자룐데……! 새로 오는 팀장님 엄청 까다로운 사람이라잖아. 자기 능력이 너무 뛰어나서 그런가 웬만한 걸론 성에도 안 차는 사람이라잖아! 그런데 그런 사람이 처음 내린 미션부터 실패하라고? 그렇게 실망시키라고?”
울컥.
눈물이 날 것 같다.
“난 그렇겐 못 해! 내가 이거 발표 제대로 하려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밥도 안 먹고…… 이씨, 내가 자다가도 벌떡 깨서 만든 건데……!”
사각사각.
사각사각사각사각.
“너 진짜 사과 그만 먹어!”
-그렇게 중요한 걸 왜 날려먹었대. 바보도 아니고.
“내가 날렸냐!”
대뜸 소리쳤다가 혹시 후배들 중 누가 들었을까 봐 얼른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들 사무실 안에서 정신없는지, 복도에 나와서 통화를 엿듣는 이는 없었다.
누가 들었다면 자기네들을 탓한다고 여겨서 상처받았을 텐데 다행이다. 예영은 얼른 목소리를 낮추며 시무룩한 기색으로 전화기 속에 말을 흘려 넣었다.
“……회사 후배가 허락 없이 마지막으로 뭐 좀 손본다고 건드리다가 날린 거야.”
-그래도 백업 제대로 안 해 놓은 건 네 잘못이지.
하긴 그렇다.
천하의 도예영이 어쩌다 이런 실수를 했을까.
내 노트북에 남아 있던 자료라도 내버려 둘걸. 그건 왜 삭제해가지고…….
하, 누굴 탓하랴, 내 탓인데.
답답한 가슴 밖으로 한숨을 뱉어냈다. 전화기 너머에선 말없이 계속 사각사각 소리만 들려왔다.
-10만원.
그러다 경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입금 확인되면 바로 친구랑 전화연결 시켜주지.
“야! 10만원은 너무 비싸!”
-5분 준다. 입금해라.
뚝. 사각사각 소리가 뚝 끊겨 버렸다. 예영은 치를 떨길 잠시, 어쩔 수 없이 빠르게 입금부터 했다.
그리고 잠시 기다리자 거짓말처럼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온다. 예영은 따지고 잴 것도 없이 냉큼 전화부터 받아들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경훈이 누님?
“네! 저예요!”
-100% 다 복구하는 건 어려울 텐데요. 그래도 괜찮으시겠어요?
“그럼요! 어차피 다 살릴 거란 기대는 안 했어요. 어디세요? 제가 바로 갈게요!”
통화를 끝내자마자 얼른 컴퓨터 본체를 들고 뛰었다.
“선배님! 제가 갈게요!”
“아니. 내가 가는 게 편해. 네가 가면 또 일 생겼을 때 나한테 컨펌 받으려고 전화해야 하니까.”
단칼에 거부하곤 급히 움직였다. 콜택시를 불러 한 치도 낭비하지 않고 이동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복구한 건 완성본의 50% 정도.
“음, 이 이상은 무리일 것 같은데요?”
7~80% 정도는 기대했었는데.
갑자기 도경훈한테 뺏긴 10만원이 뼈저리게 아까운 마음이 들지만, 그래도 경훈이 친구가 설렁설렁 해 준 것도 아니고 성심껏 도와준 걸 생각하니 그 마음이 싹 가신다. 예영은 나중에 경훈이한테 공치사하면 되니까 그냥 두라는 경훈의 친구에게 어떻게든 5만원을 쥐여주곤 다시 컴퓨터를 들고 회사로 돌아왔다.
“선배님!”
“선배님, 어떻게 됐어요?”
“쉿. 다들 방해하지 마.”
빨리 움직인다고 움직였는데도 시간을 엄청 소모했다. 예영은 새벽 두 시를 향해 달려가는 시계를 한 번 본 후, 얼른 컴퓨터를 연결했다. 그러곤 눈에 불을 켜고 모니터를 잡아먹을 듯 보기 시작했다.
이미 한 번 만들어 봤던 거니,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만드는 것보다야 훨씬 수월할 거다.
괜찮아. 아직 시간 많아.
“진주 씨! 저번에 그거…… 전에 내가 자기한테 부탁했던 카탈로그 좀 챙겨와 줘.”
“네? 아! 네.”
“다희 씨! 다희 씨는……!”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해, 복구된 자료의 뒷부분을 아예 새로 만들어나가기 시작한다. 전의 기억을 더듬어, 호흡하는 시간조차 줄여가며 몰두한다.
세 시가 되고, 네 시가 되고.
정작 사고 친 부하 직원 둘은 옆에서 꾸벅꾸벅 졸건만.
다섯 시, 여섯 시.
맞아, 여기서…… 그래, 결론이 이렇게 났었지. 여기 통계자료 넣었었고.
일곱 시.
“……됐다.”
그녀의 목소리에 졸던 부하가 잠에서 깨어났다. 예영은 부하를 향해 퀭한 눈을 돌리면서 한 번 더 읊조렸다.
“완료…… 완료 했어…….”
“허!”
나머지 부하도 깨어나선 깜짝 놀라더니, 둘이 환호를 지르며 팔짝팔짝 뛴다.
“선배님! 선배님 감사해요!”
“정말 선배님 최고예요!”
칭찬하는 목소리를 들으면서, 예영은 안도의 숨을 계속 내쉬었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이걸로 새 팀장님한테 찍힐 일은 없겠어.
첫날부터 밉보일 일은 없겠어.
정말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급격히 안도하던 그녀의 앞에.
“이쪽은 오늘부터 마케팅2팀을 이끌어 갈, 윤윤완 팀장.”



……간밤의 그 변태가 나타나 버렸다.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프린트물을 아래로 투두둑 떨어뜨려 버렸다.
“선배님.”
“어?”
제가 프린트물을 떨어뜨린 줄도 모르고 멍 때리고 서 있던 예영은, 저를 부르는 속삭이는 목소리를 듣고서야 정신을 번뜩 차렸다.
“아! 죄송합니다.”
급히 사과한 후 바닥에 떨어진 종이들을 부랴부랴 줍자, 후배들도 덩달아 같이 주워 준다.
어떻게 해…… 어떻게 해…… 어떻게 해!
종이를 줍는 내내 머릿속이 아찔했다. 간밤에 제가 저지른 짓이 파노라마로 뇌리를 스치다가, 제가 앞에 선 남자의 속옷을 굳이 발로 밟고 도망친 장면이 떠오르자 그대로 움찔 굳어 버렸다.
미쳐…… 내가 미쳐! 어떻게 해…… 어떻게 하냐고!
“도 대리, 왜 그래요?”
“예?”
그러다 이사님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다시 정신을 차렸다. 예영은 다급히 서류 뭉치를 정리한 후 일어섰다.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하하, 그 똑부러지는 도예영 씨가 웬일이야. 새 팀장님 앞이라서 긴장했나? 하하하!”
“아하…… 하.”
이사님의 유쾌한 웃음소리와 저의 어색한 웃음소리 너머로, 후배들이 의아하게 쳐다보는 게 느껴진다. 이번에 과장을 달고 팀에 새로 합류하게 된 얄미운 남민종 놈이 저를 향해 혀를 쯧쯧 차는 것도 느껴진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지금 그 모든 걸 다 제치고 가장 크게 와 닿는 건 그저.
저를 향한 새 팀장의 은근하고도 미묘한 미소.
“도예영 대리……로군요. 도예영 대리.”
마치 이름을 뇌에 새기듯 낮게 읊조리는 팀장의 모습.
마른침이 절로 꼴깍 넘어갔다. 예영은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어색한 미소를 걸었다.
“맞아. 도예영 대리. 아주 능력 있는 친구라고. 마케팅 팀장이, 아니 이젠 마케팅 1팀 팀장이지, 여튼 저 친구 2팀으로 보내면서 얼마나 아까워했는지 몰라. 만능 인재니까 뭐든 믿고 맡겨 보라고!”
“아, 그래야겠군요.”
그는 여유롭게 대답하건만, 예영의 손에선 땀이 난다.
“그리고 이쪽은 이번에 과장으로 승진한 남민종 과장. 계속 영업부에 있다가 이번에 새로 합류한 친구. 이 친구도 훌륭한 인재야. 잘 써 먹어!”
“환영합니다, 팀장님! 저 남민종!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을 때까지! 팀장님의 튼실한 수족이 되겠습니다!”
“하하, 언제 봐도 믿음직해. 자네 팀장 잘 모시라고.”
“네! 믿고 맡겨만 주십시오, 이사님!”
“자자, 나머지 팀원들도 자기소개 해야지?”
이사님의 권유 아래 팀원들이 모두 제 소개를 하고 환영의 말을 전했다. 너그러운 이사님의 흥겨운 사회 실력 덕분에, 다들 불편해하거나 무거워하는 대신 화기애애하게 웃으며 밝은 분위기를 즐겼다.
물론 예영만 제외하고.
그녀는 그저 그린 것 같이 변화 없는 어색한 미소를 입에 문 채, 마음속으로 어떻게 해, 어떻게 해, 하는 소리만 반복하고 있을 뿐.

작성일 2019.08.02 10:11:58
최종수정일 2019.08.02 10:12:41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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